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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잠재의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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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심리연구소 작성일15-03-26 12:04 조회3,9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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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잠재의식의 세계



마음속에 마음이 있다


  자기개선을 위한 계획에 앞서 우리는 마음의 구조와 그 작업, 특히 마음의 내부에 관한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장애나 고통은 이 속마음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내적 마음의 조종방법과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치료하고 싶은 상태(증상)의 원인을 찾아내는 기술로서 최면이 다른 어느 방법보다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표층의 마음인 의식과 심층의 마음인 잠재의식으로 구분해서 설명코자 한다. 이 심층의 마음은 무의식적 마음을 말하는데, 무의식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 하나가 내부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상태, 즉 사람이 마취제로 잠들거나 타격을 받아 정신을 잃은 혼수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내부의 마음을 잠재의식이란 용어를 쓰기로 한다.
  우리는 아직 이 내적 마음의 실제 구조와 그 작업에 관해서 거의 조금밖에 모르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와 아이스쿨라피우스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 안에 그와 같은 부분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잠재의식에 대한 연구와 정신분석의 착상으로 우리의 지식을 상당히 진전시켰다.
  그 이래, 잠재의식에 관한 깊은 연구는 보잘것없었으나, 질병이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는 것은 크게 주목할 일이다. 다만, 그 비율이 다소 다를 뿐인 데 어떤 의학자들은 질병의 약 반수가 심리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80%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음의 구조


  캐나다의 유명한 권위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 박사는 전염병을 포함해서 모든 질병의 발병요인은 스트레스라고 주장했다. 스트레스라던 가, 일에 대한 중압감은 저항력을 감퇴시켜, 우리를 전염병에 걸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나라에서는 프로이트 사상을 의과대학과 정신병학 센터에서 가르치고 있어, 대부분의 정신의 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밖의 나라에서는 파블로프(Pavlov)의 조건반사 이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내적 마음의 구조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는 어떤 면에서는 확실한데, 마음의 모든 작용을 너무나 기계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마음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마음이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분, 즉 의식을 자아라고 불렀다. 그는 또 양심으로서 최선의 사고인 다른 부분을 초자아라 했으며, 의식 밑에 있는 이드(id)라는 부분을 기억과 본성의 부분이라 말했다. 그다음에 프로이트는 이드와 자아와의 사이 바로 의식 밑에 있는 전의식 혹은 선의식이라는 부분이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그러나 유명한 스위스의 칼 융 박사는 초자아는 의식이 아니라 마음의 영적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을 초의식이라고 규정, 신과 집적 연결된 또는 초인의 부분인 우주적인 잠재의식 부분이라 말했다.


놀라운 자동서기


  최근의 유명한 여성 정신병학자 ‘아니타 뮬’은 내부의 마음 구조를 더 알려고 자동서기(자동기술)를 시험했다. 이 자동서기는 놀라운 것이다.
  손에 펜이나 부드러운 연필을 쥐고 있으면, 잠재의식은 우리의 손 근육을 움직여서 무엇을 쓰는지 의식됨이 없이 똑똑하게 글을 쓰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손이 분주하게 글씨를 쓰고 있는 동안, 우리의 눈은 책이나 잡지를 읽을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자동인(自動人) 가운데 약간 명은 오른손이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을 쓰고, 동시에 왼손은 전혀 다른 것에 대하여 쓰는 동안에 눈은 의식적인 마음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세 가지의 정신활동이 한꺼번에 이루어진 셈이다.
  ‘뮬’ 박사는 이것을 하려면 5~6시간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이렇게  자동으로 쓰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훌륭한 피술자는 거의 모두 최면 중에서 이 자동서기를 할 수 있다. 낙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 그것을 빨리 배울 수 있는데, 낙서는 행동과 같은 유형이고 더욱이 그 낙서를 해석할 수 있다면 실로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계산기와 같은 잠재의식


  그러나 내적 마음의 구조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이 ‘맥츠’에 의해 잘 설명되고 있다. ‘로버트 비너’는 인공두뇌학 지식을 발전시킨 최초의 사람인데, 그 지식이란 잠재의식이 두뇌를 통해서 전기계산기처럼 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순전히 기계적이고 복잡해서 가장 정밀한 계산기라도 인간의 두뇌에다 비교한다면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이론은 잠재의식이 사고하는 능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일단의 심리학자와 행동주의자는, 인간은 환경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 우리의 행동과 사고는 오로지 기계적이다. 에 의하여 완전히 지배된다고 믿고, 잠재의식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현대 심리학자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내적 마음의 존재를 확실히 보여주는 자동서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로도 반증 되고 있다.
  이것은 다음 장에 소개된 의식에서의 질문에 대한 응답을 잠재의식에서 얻어내는 이데오(Ideo) 모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이데오 모터란 자동서기법을 변형한 것으로 그 본질은 같은 것이다. 의식적인 마음은 귀납적으로, 또는 연역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반면, 잠재의식적 마음은 단지 연역적으로만 사고한다.


잠재의식은 어떻게 생각하고 추리하나


  만약 우리가 잠재의식을 자기의 이익을 목적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먼저 잠재의식의 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때로 잠재의식은 다소 유치하고 미숙하게 보이기도 한다.
  잠재의식은 축어적(逐語的)으로만 이해한다. 가끔 우리가 하는 말은 그 말이 가진 의미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흔히 “나를 미치게 한다.”라는 말을 잘 쓴다. 이것은 화가 났다는 뜻인데, 실상 우리는 ‘무분별해진다’라는 정도로 말하는 것이다.
  최면상태에 있을 때 피험자의 잠재의식은 표면에 떠오르거나, 때때로 자동서기에서처럼 될 수 있다. 만일 깨어 있는 상태의 사람에게도 자동서기에서처럼 될 수 있다. 만일 보통 각성상태의 사람에게 “당신의 고향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는 그 장소를 지적함으로써 분명한 대답을 할 것이다. 그는 그 질문이 장소를 알려고 하는 뜻으로 해석해서, 예를 들면 “대전입니다.”하고 지명을 대게 된다.
  그러나 아주 깊은 최면상태에 있는 사람은 그 질문에 “네”나, 또는 단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대답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정확한 축어적, 직설적인 대답이다. 이것은 잠재의식이 사물을 축어적으로 이해한다는 좋은 예가 된다.
  위험한 국면이 이와 같은 잠재의식의 직역으로부터 일어날 수 있다. 때때로 의사는 어떤 질병치료에 실패해서 난처해졌을 경우에 환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자. “회복이 안 되어 걱정되는군요. 당신은 이 증상을 가지고 사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이것은 직설적으로 문자 그대로 무엇을 의미할까. 놀랍게도 그것은 환자가 그 증상을 지니고 있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만일 그 증상을 잃는다면 죽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해석은 환자로 하여금 증상이 나아지는 것마저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죽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소견을 말한 의사는 그렇게 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라고, 배우고, 또 성숙해 감에 따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의식적인 관점도 변화를 겪는다. 잠재의 식 또한 그 관점을 변화시키지만, 종종 유아기의 관점이 그대로 지속되는 수가 있다.
  만일 우리가 여섯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면, 우리의 잠재의식은 항상 여섯 살 때의 그것으로 보려고 한다. 뱀에 놀란 어린 시절의 사건은 독이 없는 누런 뱀을 보고도 공포를 일으켜서 뱀에 대한 지속적인 공포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사람들은 뱀을 싫어하지만 어떤 뱀은 독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뱀의 그림까지도 공포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수가 있다. 이제 우리가 배우게 될 자기요법 중의 일부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잠재적인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다.


죄의식과 자기처벌


  모든 사람은 잠재의식의 충동을 받아서 때때로 강박적인 행동을 나타내곤 한다. 물론 이런 행동이 전혀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면 의식적으로는 강박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강박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의식하지만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떤 강박은 매우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매일 강박적으로 몇 시간씩 손을 씻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여성이 있었다. 손은 계속해서 닦고 문질러서 껍질이 벗겨졌다. 그 여성은 손 씻기를 멈출 수 없었고 왜 그것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그 원인은 그 여성이 자기 손에 죄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여성은 그 죄를 씻어 버리려고 허무한 짓을 계속했던 것이다.
  강한 죄의식은 자기처벌을 위한 강박을 일으킨다. 자기처벌의 기술용어는 매저키즘(masochism)이라고 한다. 큰 공장에서 작업 중에 일어난 사고의 80%가 20%의 고용자들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종종 잠재의식적으로 충동을 받았고 고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 스스로 사건을 저질러 놓고는 그것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낀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각종 사고의 높은 비율은 자기처벌에 대한 잠재의식의 요구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내적 마음은 결과를 종결시키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즉각적인 요구에만 관심을 둔다.
  만일 사람이 강제적으로 충동된 사고를 저지른다면, 그는 당분간 수입을 잃고 비싼 의료비와 병원비용을 물것이며, 영원히 절름발이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만일 이 사고가 피학대성 음란증이라면 그 사람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 가족이 고통을 격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는 잠재의식에 의해 질책 당한다. 이상하게도 잠재의식의 일부분은 때때로 인간에게 나쁜 짓을 강요하고, 다른 부분인 초의식이 그것을 질책하고 있다.


기억은 어떻게 작용하나


  잠재의식은 기억의 창고이다. 영화가 음향효과와 모든 감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시력이나 청력, 기타 촉각과 후각, 미각 등을 통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기록된다. 최면상태에서 그 영화는 재 상영 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섯 살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몇몇 흥미진진했던 사건은 어렸을 때 것이라도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그것만을 진짜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자세히 간직되어 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것들을 잊을 수 있지만 잠재의식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잊은 많은 것이 여러 가지 방면에서 우리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최면은 이 무의식적 기억의 범위를 밝혀주는 데 이용되고 있다.
  정신상태는 종종 유아기의 환경과 외상성 사건(놀람, 충격)의 경험으로 축적될 수 있다. 우리는 자주 불쾌한 경험의 기억을 억누르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기에, 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쫓아버린다. 그러면 그것들은 의식적인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잠재의식에서 곪아 마침내 많은 장애나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고통의 원인에 관한 의식적인 인지를 가질 수 없다. 언제부터 기억이 시작되는가? 생후 몇 달에서, 한 살이냐, 두 살이냐, 더 빠른 시기의 기억이 있는가?
  최면에 정통한 학자들은 갓난아기 때의 기억도 보존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태아기의 기억도 있다고 믿고 있다. 필자는 수년 전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에서 의뢰한  남, 여 두 피험자를 대상으로 최면으로 태아기 때로 퇴행시켜 당시의 몇 가지 기억을 회생시켜 그 기억의 신빙성을 검증해 보았는데 대체로 맞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 사실이 방영(放映)되었다.
  최면 중에 있는 사람은 출생된 경험을 기억해서, 실제로 일어난 상세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것은 진실한 기억이라고 확신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힘들다.
  초기의 기억과 억압된 기억을 소생시키는 것은 정신장애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방법은 다음 장에서 논의 될 것이다.


속마음이 어떻게 우리를 보호하나


  내적 마음의 중요한 임무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다. 즉 우리가 깨어 있거나 잠을 자고 있거나 간에 항상 지각하고 있으며 그 기능을 발휘한다. 이 내적 마음은 의식적 마음이 타격으로부터 또는  마취제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까지도 늘 알아차린다.
  아기 엄마는 곤하게 잠을 자다가도 아기의 낑낑거리는 소리나 울음에 곧잘 깨어난다. 자, 일어나라!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라고 잠재의식이 엄마에게 자극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 다.
  만일 무심코 뜨거운 것에 손을 댔다면, 우리의 내적 마음은 팔 근육에 재 빨리 소식을 전해서 그 상황을 생각하고 분석하기 전에, 우리의 손을 잡아당기게 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잠재의식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려고 항상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질병이나 자기 손상이나 파괴까지도 일으키기도 한다.


잠재의식이라는 기억창고


  우리들의 내부에 다른 사람이 또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는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하나의 마음을 가졌을 뿐이다. 마음을 바다에 떠 있는 빙산에 비유해 본다면, 의식 부분은 물 위에 떠 조그마한 부분에 불과하고, 잠재의식은 물밑에 잠겨 있는 거대한 빙산과 같은 존재이다.
  인간은 마음과 육체가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장애를 다루는 데 있어서 고려되어야 한다. 내적 마음은 두뇌를 통하여 정신과 육체를 조정하고 움직여서 그것에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하면 표면의 지각 밑에 잠재의식과 초의식이란게 있다. 초의식은 포착하기 어려운 잠재의식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이다.
  자동적 글씨쓰기(자동서기)로 잠재의식은 어떤 분야에서는 비록 미숙하나마 사고를 하고, 모든 것을 직역으로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다.
  잠재의식은 종종 유아적 관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자기최면으로 그것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또 잠재의식은 전 조직을 통제하고 있고, 상실한 기능을 회복시키고 능력을 발휘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잠재의식이라는 창고 속에 기록되어 있다. 단지 극소수의 일부분만이 의식적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렇지만, 최면에서는 잊어버린 과거 경험의 기억을 되살려 낼 수 있다.
  잠재의식은 때때로 우리가 저지른 행동을 벌하지만, 또 다른 의무 중의 하나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일이다.


잠재의식은 행동 에너지의 원천


  잠재의식이 우리 인간행동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후최면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후최면현상이란 최면 중에 최면자가 피최면자에 암시를 주면 각성 후에 암시대로 행동하는 현상으로, 행동의 원동력을 잠재의식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최면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셋 까지 수를 세면 눈이 떠집니다. 당신이 눈을 뜬 다음에 내가 손 벽을 치면 당신은 이 방의 출입문을 열러 놓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한 것은 당신이 눈을 떴을 때는 모두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당신은 틀림없이 문을 열러 갑니다.”란 암시를 주어 각성시키고 나서 잠시 동안 잡단을 나누다가 손 벽을 한 번 치게 되면 피최면자는 실제로 문을 열러 가게 된다.
  이때 문을 연 이유에 대해 물으면 “방안 공기가 탁한 것 같아서….”라든가 “좀 방안이 “더워서….”라고 변명을 한다. 피험자는 왜 문을 열었는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자기의 행동에 대하여 사후에 이유를 붙인다. 이 현상은 잠재의식이 원동력이 되어 의식층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음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운명을 만드는 것은


  모든 사람은 자기 운명의 제조자이다. (스테일) 운명 속에 우연은 없다. 인간은 어떤 운명을 만나기 이전에 자기가 그것을 만들고 있다. (T.W.윌슨)
  미래 우리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다 고 바라고 노력한 결과이다.
  세상에는 자기의 희망대로 인생을 걷는 사람과 아무리 땀 흘려 노력해도 불행한 인생을 걷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숙명일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의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이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있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잠재의식은 생명과 행동력의 원천이고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잠재의식의 본성을 확신하고 장래에 ‘이렇게 되고 싶다’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짜 넣으면 차후에 그것이 그대로 실현되는 법이다.
  우리가 현재 자기의 의식대로 생각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새겨 넣어져 있는 프로그램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이 프로그램대로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희망으로 어떤 장래에 대한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이렇게 되고 싶다.”라고 하는 미래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잠재의식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고 믿어 버리고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행동하게 되면 늦든 빠르든 간에 반드시 달성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실행하는 데는 혼자서 행하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신뢰할 만한 사람과 의논해서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인간은 혼자서는 약한 면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도 행동도 너그러워져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고 할 수 없었던 이유를 붙여 멋진 변명을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짜여진 프로그램은 반드시 실현된다. 잠재의식에 준 소망의 영상은 부여한 영상대로의 것이 실현된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부여할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잠재의식의 성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놀라운 잠재의식의 작용

 *잠재의식은 암시를 잘 받는다.
 *잠재의식은 비판 없이 무엇이든지 받아들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비판적으로 받아서
       행동을 일으킨다. 잠재의식 자체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 *잠재의식에 각인된 것은 반드시 실현된다.
 *의식과 무의식(잠재의식)이 다투었을 경우, 이기는 쪽은 언제나 잠재의식이다.
 *의식과 무의식이 일치한다면 상승적인 힘이 발휘된다.

   ‘정신일도하사불성(情神一到何事不成)’이란 말처럼 정신을 집중시키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 화재가 난 장소라던가 절박한 비상사태에서는  무서운 힘이 생겨난다. “좋아지면 일을 멋지게 할 수 있다.” 등의 말대로 의식과 감정이 일치했을 때 큰 힘이 발휘된다. 잠재능력개발훈련에서는 이 성질을 크게 이용하고 있다.

     *잠재의식은 훈련이 가능하다. 최면, 자율훈련법, 암시에 의해서 잠재의식의 작용을 강하게 할 수 있다.
 *잠재의식은 단세포이다. 외곬이고 단순하고 구체적일수록 암시를 잘 받는다. 상대가 제일 기뻐할
       것 같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말을 되풀이해서 사용하면 잘 믿고 받아들이게 된다.
 *잠재의식은 다치기 쉽다. 외부의 자극에는 대단히 약하다.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기 쉽다. 그 때문에 대
       뇌의 새로운 피질을 지키는 작용을 한다.
 *잠재의식은 잠들지 않는다. 의식은 잠들어도 잠재의식은 항상 활동하고 있다. 우리들의 생명이 있는
       한 계속 일한다. 자고 있는 사람에게 속삭인 사랑의 말도 잠재의식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속삭인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게 한다.
 *잠재의식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를 신뢰하고 호의를 나타내면 반드시 반응이 있다. 그것은 거리에
       관계없다.

   이러한 성질을 가진 잠재의식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의 벽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식의 벽이 두꺼우면 벽을 제거하기 위해서 암시나 최면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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