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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사고와 번민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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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심리연구소 작성일15-03-26 11:58 조회2,9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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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사고를 극복하는 방법



당신은 부정적 사고자인가


   일반적으로 모든 것이 잘 조화된 사람은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려 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분별 있는 정확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어떤 능력의 결핍을 깨닫지만 재능을 잘 활용할 줄 안다. 그의 결점이 그를 방해하지 못하고 그도 또한 그것들을 무시해 버린다. 그는 낙천주의자로서 목표를 설정해서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잠재의식은 그가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성공하고 건강을 누리는 데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는 시간 대부분을 행복하게, 그리고 생을 즐겁게 살려는 경향이 있다. 만사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노이로제적인 증상이 거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되면 긴장, 당황, 불안, 초조, 실망, 낙담, 그리고 적대감 등을 일으키게 되고 정신신경증에 걸리기 쉽다. 그는 현실에 부딪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목표 세우기를 두려워한다. 실패를 예견해서 성공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열등감은 발에 붙은 쇠사슬이나 쇳덩이와도 같다. 잠재의식적(무의식적)으로 통제된 그의 행동은 거의 실패를 가져온다.
   긍정적 사고의 가치에 대하여 다룬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 책들은 같은 것에 중점을 두었지만 다른 방향에서 접근이 시도되었다.
   신앙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필(Peale)의 '긍정적 사고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라는 책이 훌륭하다. 우리나라의 번역본은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책명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의 접근 방법은 신념과 기도로 신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적이고, 상식적인 견해는 브리스톨(Claude Bristol)이 쓴 ‘신념의 마력(The magic of Believing)’에서 자상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그는 우리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잠재의식으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영향력을 끼칠 방법을 제시했다.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하도록 습관을 기를 수 있다. 그것은 최면을 통하여 보다 확실히 성취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가 우리의 괴로움을 즉시 떨쳐주는 요술지팡이는 아니다. 그러나 성공과 행복을 찾는 데, 질병을 고치는데, 그리고 성격과 태도를 바꾸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질병 문제에 있어 모든 의사는 환자의 정신적 자세가 필연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환자가 비관적이고, 회복에 대한 신념이 없고, 살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죽고 말 것이다. 반면 생애의 강한 집념을 갖고 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갖고 있는 환자는 중환자일지라도 회복이 가능해질 수 있다. 신념의 마력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나 적수공권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많은 사례가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두려움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나


   부정주의는 조건반사이다. 부정적 사고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두려움에 바탕을 둔 우리 감정은 두려움 자체이고, 근심과 실망, 적의, 죄책감 등인데 신경질을 동반하고 있다.
   두려움 자체는 의식적으로 인식된다. 우리는 어떤 명확한 사물이나 국면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포의 원인은 의식적으로는 알 수 없을지 모른다. 아마 거의 알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일반적인 두려움이다. 미래의 삶을 믿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까지도 강한 죽음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부의 종교가 사람들을 선(善)으로 인도하려는 취지에서 지옥의 불과 처벌이라는 사상을 주입시키는 설교에서 유래하고 있다.
   죽음에의 공포는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을 때, 우리가 겪는 환경으로부터 일어난다. 두려움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죽는 순간에 겪을 괴로움에 있다.
   질병의 공포 또한 모든 공포처럼 환경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성장함에 따라 대부분 질병의 고통을 체험하게 되고, 남의 병고를 보게 됨으로써 병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적어도 의식적으로 우리는 병을 원하지 않는다.
   질병의 공포는 우리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느낀다. 또 다른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공포는 경제에 관한 공포이다. 생존경쟁은 쉽지가 않다. 경제적인 안정을 획득하기는 특히 어렵다. 돈의 결핍은 지속적인 공포를 조장한다.
   불안정은 금전결핍의 결과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사랑받지 못한다거나 거절당한다는 두려움에서도 나온다.
   우리의 강한 무의식적 경향 중의 하나는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성장할 때 자주 거절을 당하면 이와 같은 욕구는 점점 강해져서 신경증적 증상이 된다. 부정적 사고를 가지면 우리는 거절당할 걸로 예상하게 된다.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면 사랑할 능력을 잃고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거절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심은 공포의 일종으로, 불유쾌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대한 일반적인 걱정이다. 근심하는 사람은 보통 자기가 왜 걱정하는지 말하지 못한다. 그 뒤에 숨어 있는 공포는 잠재의식적이어서 인식되지 못한다. 근심은 불안한 감정이다. 모든 신경증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은 근심 상태이다.
   근심의 이유가 불명확할 때 이것을 “자유로 떠다니는 불안”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불유쾌하거나 무서운 일이 일어나려고 한다는 공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는 마치 데모클레스(Democles)의 칼이 머리 위에 머리카락으로 매달려 있어서 어느 때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과 같다.
   재난의 예상은 조건반사이다. 잘 조정된 사람은 그와 같은 예상을 하지 않고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적의와 분노


   너무 강하거나 지속적이지 않는 분노와 정의는 정상적인 것이다. 때때로 화를 내지 않거나 타인에 대하여, 운명에 대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적대 감정을 갖지 않는다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당연히 이 감정들은 통제되어야 한다. 화났다고 마구 폭력을 가하고 두들겨 부순다면 곤란한 일이다.
   많은 사람은 이 감정들을 나쁜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이 감정들을 실행하면 죄의식을 갖는다. 죄의식은 잠재의식적으로 자책을 가져온다. 이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자극되는 순간에 없어지거나 억압된다. 억압의 다른 이유는 분노에서 통제 상실에 대한 공포, 그리고 통제가 안됐을 때 결과상실에 대한 공포이다. 죄책감과 억압은 편두통과 그 밖의 고통스러운 증상 등 불유쾌한 결과를 초래한다.
   분노와 적의가 자극에 대한 정상적인 감정반응이라 여겼을 때는 억압이 필요치 않다. 이것들을 억제하는 것은 감정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잠재의식의 표면 아래에서 지속되고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이 감정의 적당한 조절은 허용될 방법으로 해방시키는 것이 좋다. 몇 가지 허용될 방법이 있다. 너무나 자주 억압된 적의는 타인이나, 적의의 원인도 아니었던 가까운 사람에게 돌출된다. 남편이나 부인, 어린이들은 흥분으로 나타난 적의를 정면으로 맛봐야 한다.
   분노는 무리 없이 발산시킬 수 있다. 싸우거나 비꼬고 적대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적의를 일으킨 사람이나 상황에 대하여 침착하게 말하면 분노의 감정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은 감정을 해방시키는 다른 방법은 운동을 통한 방법이다.
전력을 다해서 골프를 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만족이 있는가. 하드볼을 힘껏 치는 테니스 선수도 잠재적인 적의를 깨닫지 못하고 발산시킨다. 미용체조든지 어떤 형태의 운동이든지 모두가 잠재적 적의나 현재 지니고 있는 적의를 해방시켜 준다. 야구팬은 ‘심판을 죽여라.’라고 소리치든가 운동선수를 야유하여 감정을 해방시킨다.
   강한 감정이 약한 감정을 무효화시키는 게 심리법칙이다. 강한 분노는 공포를 극복하고 성난 사람은 자 기를 놀라게 한 사람을 공격한다. 그러나 공포가 분노보다 크면 공포가 만연해서 공격 대신 회피가 생긴다.
   남편이 부인한테 화가 났을 대, 그 감정을 통제하고, 웃는 낯으로 그녀를 껴안고 질책 대신에 키스를 해준다면 분노가 사라지고 오히려 사랑과 욕망의 감정이 일어날 것이다. 그녀도 화가 났지만 그렇게 대단치 않은 한 사라질 게 분명하다.
   분노가 자극될 때를 포함해서 언짢은 기분이 일어날 때 감정을 다스리는 다른 기술이 있다. 역시 첫째는 통제지만 아무래도 감정을 삭이기가 어렵다면 다음과 같은 문구의 암시를 되풀이해 본다. “도대체 무엇인가? 시시한 일이다.” “'흥분해서 무엇을 얻자는 건가?” “부처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러면서 이 암시 문구에 포함된 사상을 받아들이면 흥분은 감소하고 기분이 가라않는 암시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실망


   인생은 실망으로 가득 차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의 금지로 이 실망을 맛본다. “안 돼요!”, “그런 짓을 하면 못 쓴다.” 등 그 밖에도 다른 부정적인 말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다. “하고 싶은 데요.”는 사회의 “할 수 없다.”라는 반대말로 묵살되었다. 부모와 사회의 금지는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실망이 되고 갈등의 기초가 되었다. 그 후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욕망과 욕구 중의 어떤 것은 하나도 채워지지 않았고 더 많은 실망을 준다.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문구는 좌절감을 해방시키는 좋은 방법으로 실망을 일으킨 상황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죄의식


   우리는 잘못과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생각이 모자란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에게는 사회의 ‘터부’로 억압된 원시인적 본능이 있다. 다행히도 양심이 욕망 속에 있어서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현재보다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양심적이다. 우리는 양심이 그르다고 한 것을 반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집착하고, 강한 죄의식을 유발시키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죄의식과 수음은 자책과 성적 장애를 수반하게 된다. 물론 죄의식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뒤에 서술된 성(性) 부분에 있다. 기초적인 공포감정의 산물은 신경질이다. 이것은 신경질적인 습관으로 증명되는데, 예를 들어 손가락을 깨문다든가, 불안감(안절부절), 흡연, 과음과 기타 여러 가지 증상이 있다.


번민


   번민을 너무 하면 또 다른 불쾌한 조건반사가 된다. 누구나 때로 번민을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심하게 아플 때와 같은 경우에는 정상적이다. 그러나 만성적 번민은 비정상적이다. “근심꾼”은 아무리 만사가 잘 되어도 번민한다. 번민의 원인이 제거되면 그는 곧 번민할 것을 찾는다. 휴식 대신 그는 마음을 번민에 집중시키고 밤에 눈을 뜬 채로 누워 있다.
   그는 번민을 부정하지만 사실은 번민을 함으로써 기쁨과 만족을 끌어낸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매조키즘(masochism)으로 발전하고 그는 자기 자신을 벌주는 결과가 된다.


무엇이 만성적 요인을 조장할까


   동일시가 요인이 되어 부모 중의 하나가 만성적인 번민꾼이라면 자기의 행동은 부모처럼 각색되어 무의식으로 아버지나 어머니를 닮아 번민하게 된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만성적으로 번민하기 쉽다. 동일시의 목표는 대개 어머니이지만 아버지나 가까운 친척도 될 수 있다.
   번민의 주된 근거는 항상 최악의 사건을 예상하는 부정주의와 공포이다. 번민의 결과는 긴장으로 이것은 번민하는 경향, 즉 악순환을 증가시킨다.
   만성적 번민자에게 특히 매조키즘이 복합되는 경우 이 행동을 극복하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행동양식을 묘사했다는 것을 깨닫고 동일시를 파괴해야 한다. 그 자신이 번민하고 있을 때에 마음을 유쾌한 것으로 돌려야 한다. 습관의 권위자인 나이트 던버(Knight Dunbor)박사가 지적하듯이 습관을 파괴하고 근절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단지 그것을 보장시켜 주는 꼴이 되어 역효과만 낼 뿐이다. 그는 말하기를 원하는 종말(암시의 형태)을 노려보라고 했다. 습관이 인지될 때는 얼마든지 과장하는 것이 그것을 파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번민의 경우에 이 마지막 사상의 수행은 최악의 사태를 생각하고 번민을 하기 위하여 신중한 노력을 함으로써 성취된다. 우리 자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정말 열심히 번민해야 한다. 내가 번민하고 있는 것은 무섭다. 일어날 일은 두렵다.”그러면 곧 상황은 완전히 우스워져서 우리는 유머러스하고 희극적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종종 만성적 번민자는 말했다. “나는 번민을 그치려고 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부정적 사고로 그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번민하는 것을 그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원치 않는다.”를 의미한다. 번민하려는 생각이 들면 이 말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번민을 그치려고 원하지 않는 이유는 일종의 공포이지만 번민자가 즐기는 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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