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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건강 - 정신위생의 기초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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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심리연구소 작성일15-03-27 14:16 조회1,8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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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위생의 기초


1. 서론

  여기서는 정신장애를 논하기 전에 일반적인 건강인이 나타내는 이상행동, 즉 이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부적당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는 일과성이거나 혹은 매우 가벼운 이상 행동이 어느 정도 항구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처음의 경우, 극히 일과성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자극에 의하여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무언가 불쾌한 상태가 일어났을 경우에 필요이상으로 화를 낸다든지, 혹은 심술을 부린다든지 해서 잠시 동안 자기를 필요이상으로 높게 보이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다음에는 비교적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서 잠시 동안의 일이 버릇이 되기도 하고, 혹은 성격화되기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정도로는 이상 성격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에 착안하여 그것을 깊이 관찰하고 그 구조를 밝히는 것이 심리적 원인으로 일어나는 정신장애를 설명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이며 정신위생의 기초를 알기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 현상은 정신병리학자나 이상심리학자에 의하여 가급적 조직화되어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는 대단히 가볍게 취급되어 거의 관심 밖의 일처럼 지나쳐 버리는 일이 많으며, 학자들도 프로이트가 ‘일상생활의 정신병리’라는 책을 저술한 것 외에는 너무나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경향이 있다.
  나는 앞에서 이러한 일상생활의 극히 작은 이상행동의 구조가 명확하게 되는데 따라 심인성의 정신장애에 대해서도 확실해지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에서는 대체로 심인성정신장애의 구성을 명확히 이상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가벼운 저해행동, 예를 들면 버릇이나 성을 내는 것 등을 연역해온 것이다. 이 점 프로이트의 사소한 이상행동에 대한 견해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보겠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발육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떤 종류의 버릇이 우리들의 정신발달 과정에서 고정되고, 그 사람 고유의 것이 되기도 한다면 건강 생활에서 어느 정도 비뚤어진다고 하는 면을 생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2. 자아의 방위

  우리들에게는 어떤 위험한 자극이 가해졌을 때 그것을 도피하려고 하는 반사운동이 있다. 이것을 방어반사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물학적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를 위험에서 지키려는 경향은 복잡한 마음의 작용에서도 볼 수 있다. 방위기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엇인가 무서운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는 위기에 대한 예감으로 이에 필요한 심리구성은 더욱 불안해진다. 그래서 위기 혹은 불안에 대한 방위기제로서 도피, 공격, 억압, 합리화 혹은 진행 등의 현상이 일어난다.
  물론 이 방위기제는 건강상태에 있어서도 움직인다. 결국 현실적인 원칙에 의하여 스스로를 그것에 적응시키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상심리학, 정신의학 등에서의 이른바 방위기제는 이 적응이 현실적인 원칙에 의한 것이 아니고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앞의 이론에 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기의 소원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하여 공상의 형태로 소망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공격성에 대해서는 가끔 자기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한 반동적인 태도로서 나오는 것도 있다. 우리들은 오만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대단히 마음이 약한 사람이란 것을 알아내는 일이 있다.
  이상의 심리적인 적응의 여러 형태가 방위기제의 하나로서 나타난다. 지금 말한 것은 이른바 원칙적인 조건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예를 들면 학문의 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무리하게 매우 어려운 표현을 써보기도 하고, 혹은 일반적으로 생소한 분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기도 한다.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이 전혀 알 수 없는 분야에 관한 일을 말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든 몇 개의 예로 아는 것같이 방위기제가 움직일 때에는 저변에 열등감 혹은 불안감이 있는 것이 발견된다. 결국 열등감으로 인한 자기 약점을 우월감이라고 하는 보상적인 행위에 의하여 보충하려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기제에서 병적인 것으로의 이행은 현재 미국학파의 정신의학에서 대단히 많이 취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자아가 상처받는 따위의 무엇인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그 불쾌한 체험이 의식 아래로 밀어 넣어 잊으려 들기도 하고 혹은 병이 되어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3. 불만의 해소

  욕구 불만은 왜 일어날까
  방위기제의 문제만으로는 아직 마음의 구조가 충분히 설명되어 있지는 않다. 여기서는 욕구수준과 욕구불만의 문제로 다시 보기로 하겠다. 우선 우리들이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의 예를 들어보자. 강한 욕구가 있으면 그것에 비례해서 우리들의 생활이 어려워진다. 우리들이 아주 높은 욕구수준을 가지고 있을 경우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도 풍부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지위에 서 보고 싶다고 하듯이 자기 욕구의 수준을 매우 높은 곳에 놓고 보면 거기에서 인생으로의 적응에 걸려 넘어진다던가 장애와 고통이 오기 시작한다.
  극히 일반적인 견해지만, 히스테리성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현시욕이 매우 강하다. 결국 자기 현시욕은 자기의 능력 이상으로 자기를 타인에게 보이고 싶다는 욕구이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생각해서 이러한 욕구는 누구라도 가지고 있다. 무론 어느 정도 이러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현실 이상으로 너무나 높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거기에 나타나는 것이 욕구불만이라는 것이다.
  욕구 불만은 이상심리학을 논할 것도 없이 우리들 생활 속에 언제나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인생을 ‘눈물의 계곡’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생각해 봐도 극히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욕구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여성이 동료남성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에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차를 끓이지 않으면 안 되고 만약 차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뭐야. 여자인 주제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도 욕구불만의 하나가 된다. 또 회사원인 경우 자기의 능력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고 자기 능력에 알맞은 지위가 부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욕구불만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병적인 것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가를 일상 생활적인 것의 예를 들면서 서술해 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들은 대단히 높은 욕구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여기에 대해서 우리들은 대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 이 높은 욕구 수준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하는 것은 정신위생상 하나의 기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A양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A양은 현재 18세이고 중류가정에 태어났다. 학업성적은 대체로 중간 정도이며 형제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집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A양은 영화를 보거나 잡지를 볼 때 언제나 끌리는 것은 대단히 화려한 생활이다. 이를테면 어느 여배우가 자가용차를 샀다면 어떤 자동차의 사진을 보고 있는 동안에 점점 그것이 그의 꿈이 되어서 자기가 그 입장에 놓이는 것을 상상한다.
  언젠가는 나도 여배우로 뽑히게 되어 곧 나도 그런 화려한 생활이 찾아오게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자기를 얕보던 친구도 그 일로 매우 놀라게 될 것이라고 쉴새없이 공상한다.
  이번에는 다른 잡지에 나온 예쁜 집을 보면서 자기는 이런 집에 사는 것같이 실감한다. 그리고 전기냉장고를 이런 식으로 놓고, 이런 곳에 침대를 놓는다. - 많은 사람을 자기 집 응접실로 초대하고 파티를 한다. - 이러한 일을 현실감을 가지고 공상한다. 이런 경우 이미 어느 종류의 욕구불만에 대한 적응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높은 욕구수준과 현실 사이를 이러한 공상으로 메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는 단순히 자기 혼자 공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 허언이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일이 있다. 어린이처럼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외출해서 자기 환경을 모르는 사람과 기차 안에서 만나 말을 걸어오면 자기는 지금 TV탤런트 시험에 합격해서 견습탤런트가 되었다고 죄 없는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해서 사기를 한다든지, 상대를 속여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를 돋보이기 위해 장래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공상이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난 예가 이러한 종류의 허언이다.
  이것도 역시 매우 높은 욕구 수준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욕구 불만을 처리하는 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예를 다시 들어보자. 같은 예이지만 B양의 경우를 보면 그녀의 아버지는 어느 작은 회사의 중역이었으나 B양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병사했다. B양은 몹시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항상 대학에 들어가서 멋진 젊은 청년 교수와 뭔가 함께 연구를 해 보고 싶다고 꿈꾸고 있었다. B양의 경우에는 지능은 중간 정도인데 뭔가 일을 끈기 있고 활기 있게 해 나가려고 하는 경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높은 욕구 수준을 가지고 있고 자기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자기를 돋보이고 빛내 보이려고 한다. 그녀가 친구들과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가끔 자기 아버지가 다소 관계하고 있던 회사 광고가 나와 있으면 “저것은 우리 아버지 회사의 광고야” 하고 말해 마치 자기 아버지가 그 회사의 사장인 것처럼 생각되게 하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한다.
  B양은 버스를 타면 옆에 끼고 온 영자신문을 펴 본다. 특히 차안에서는 읽는 책에 몹시 신경을 쓴다. 뭔가 질이 나쁜 책이라든지, 학술 서적이 아닌 책 같은 것은 차안에서는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차안에서는 조그마한 불어책이라든가 영어책 같은 것을 읽는다. 원래 어학 실력이 몹시 빈약해서 그런 책을 읽을 실력은 없지만, 특히 자기 앞에 사람이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지, 어느 정도 혼잡하여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으면 그녀의 의식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더욱 이러한 행위를 한다. 이것은 실제로는 그녀가 그런 것을 읽고 즐겁다던가 잘 이해되어서가 아니고 그냥 그녀의 자기 현시욕을 만족시킬 따름이다.
  먼저의 A양의 경우라면 단순히 공상하고 있다든지, 혹은 기차 안에서 만난 길동무에게 죄 없는 거짓말을 하지만 B양의 경우에는 역시 어떤 허식과 허언으로 자기의 생활이나 지적 수준을 높게 보이려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욕구불만의 해결법
  대체로 누구에게든지 있는 이 욕구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건전하고 바람직한 방법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확실히 자기 욕구 불만을 보다 건전한 방법으로 해결해 가는 데는 자기가 서 있는 현실을 현실로서 인정하고 자기 실력에 따라서 끌어올려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자기가 높은 욕구수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것이 자기 능력과 떨어져 있지 않은 한 절대로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에의 A양 같은 경우에도 자기에게 어느 정도 연극적 재능이 있다면 여배우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경우 역시 상당히 노력해서 어떠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면 좋은가를 연구하기도 하고 혹은 자기의 연기력을 높이도록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의미를 개재시켜서 자기가 서 있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방법에 의해서 자기의 욕구수준, 결국 꿈에까지 끌어가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욕구불만에 대한 매우 건전한 태도이다.
  B양의 경우도 건전한 대응법은 가능하다. B양이 그러한 생활을 동경한다면 매일 조금씩 고생하면서 영어나 불어를 공부해서 자기 실력을 길러 가노라면 차츰 그러한 티를 낸다거나, 허식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아도 자기 지위를 높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대체 어떤 사람이 건전치 않은 방법으로 욕구불만을 해소하려고 하는가. 병적인 해결 방법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성격을 보면 많든 적든 소아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어린이의 경우 자기가 그만큼의 힘이 없을 때는 잘 공상하기도 하고 죄 없는 거짓말을 하기도 해서 자기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인 사회에서는 자기 현시적 욕구가 만족되었다는 것으로는 아무런 뜻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역시 실제로 현실이 보다 잘 처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점에서 공상이나 꿈의 방법으로 자기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은 역시 정신적 유아상태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잘 조사해 보면 어린이가 그렇듯이 암시를 받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영화의 멋진 줄거리나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대로 그 흥분에 쫓겨서 자기도 그렇게 되는 것 같은 마음이 되어버린다.
  자기의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이 타인의 그러한 암시에 의해서 의식도 없이 곧 남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끔 그러한 사람들은 싫증을 잘 내고 욕구의 방향이 변하기 쉽다. 그것이 자기를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된다. 자기가 언제나 하나의 확실한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그 의지적인 힘으로 하나의 목적에 이르는 것은 가능하다.
  처음에는 영화스타 이야기가 나와서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인기 절정인 운동선수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에는 젊은 실업가 이야기를 듣고 각각 그렇게 되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 이것은 어느 것이든 화려한 사회적 지위를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 현시욕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며 아무런 확실한 목적지도 없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관계치 않는다.
  그것을 정신위생학의 입장이나 혹은 임상심리학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취급해 보자.
  먼저 의지라고 하는 개념을 생각해 보자.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언제나 안일하게 욕구불만을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을 없애는 데는 의지 훈련이 필요하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경우, 그 의지의 힘으로 자기 현실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욕구수준까지 끌어올릴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의지가 약하다. 그 때문에 실제로는 그것으로 고민하면서도 자기 현실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서 공상과 같은 방법으로 욕구 불만을 메워 가게 된다. “이러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욕망을 억압하기만 하는 것은 불합리한 방법이며 자기가 높은 욕구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발전에 유용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기술한 것 같이 높은 욕구수준을 현실로 가져오는 데 성질이 비뚤어지기도 하고 꿈으로 도피하기도 하고 혹은 허언이나 허식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처럼 어떤 과제를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경우가 있는데, 건강한 해결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역시 의지의 훈련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어떠한 방법으로 의지를 훈련하면 좋은지가 임상심리나 정신위생의 과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어린이가 음악가나 운동선수, 혹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경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지도해 준다.
  또 야구를 좋아해서 자기는 피처가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될 수가 없어 대단히 불만일 경우에는 던지는 데 매우 익숙하도록 그 연습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가 원하는 피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결국 ‘노력’에 의해서 실현된다는 체험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체험은 먼 장래에까지 유용한 것이면 체험을 갖고 있는 한 단순히 지금 말한 비합리적 방법으로 욕구 불만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의지적이고 합리적인 ‘노력’이라고 하는 것에 의한 해결 방법을 배우게 된다.

 
4. 잠재의식

  지금까지 서술해 온 심리적 구조는 사실은 단순히 의식 세계에 한해서뿐만 아니고 무의식 세계도 다루고 있다. 그 때문에 더욱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정신분석학 편에서는 우리들의 의식적 정신, 결국 의식계는 인격의 극히 작은 부분으로 그것은 해면 위에 나와 있는 빙산의 작은 일각에 지나지 않으면 해면 아래에는 끝없이 깊은 무의식 세계가 가로놓여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 어느 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우리들의 관념이 우리들이 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일단 잊어버리고 다른 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는 전의 과제는 의식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 의식을 불러일으키려고 할 때에는 그것이 가능한 경우도 많다. 또 현재는 수학을 생각지 않고 있지만 뭔가 필요해서 계산을 하려고 할 경우 그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데 정신분석학에서는 이것을 전의식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들의 의지의 활동이라든가 혹은 주의 집중이라는 것은 의식 표면으로 끌어낼 수 없는 세계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면을 이용하여 의식계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는 정신분석기법에 따라서 의식계로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의식 세계는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들의 의식이 여기에 거역해도 무의식편이 자아를 통제하여 여러 가지 행동을 지배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자아는 무의식 세계가 의식 세계로 떠올라오지 못하도록 여기에 대해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저항이라고 한다.
  무의식 세계의 제일 밑바닥에 숨어 있는 것을 프로이드는 이드(ID)라고 말하고 있고 이것이 본능생활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그리고 자아는 의식과 이드 사이에 가로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자아는 이드 위에 타고 있지만 자아와 이드 사이는 그다지 확실히 구별되어 있지는 않다. 자아 아래쪽 부분과 이드와는 융합되어 있다. 자아의 외계는 외계의 직접 영향을 받아서 지각과 의식의 매개에 따라서 변화한 이드 부분일 따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아 위에 있는 초자아는 꼭 우리들의 이성 또는 도덕률이라고도 하는 것이고 이드는 여기에 비해서 정열이나 욕망을 포함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역사적으로 발달해 가면서 대단히 많은 이론이 생겼지만 여기서는 정신분석학이 프로이드에 의해서 어떻게 다루어지면 무의식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우선 역사적인 예를 들어보자. 그것은 프로이드와 브로이어(J. Breuer)에 의해 얻어진 환자 안나의 증례이다. 이 장에서는 소위 병적인 상태를 취급하지 않고 극히 일상생활에 관한 것으로 특히 이 무의식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일상 생활적인 것부터 이해하기 전에 극적인 환자의 예를 보면 알기 쉬워진다.
  안나는 극히 높은 교양과 뛰어난 재능을 겸비한 젊은 아가씨였다. 그녀가 병이 난 것은 사랑하고 있던 자기 부친의 병을 간호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 증상은 최초 우반신(右半身)의 지체에 강직성마비가 일어나서 나중에는 그것이 좌반신에 나타나기도 하고 우반신에 나타나기도 했다. 안구 운동의 장애와 함께 여러 가지 시력장애와 근육의 섬유가 굳어져서 머리를 똑바로 유지할 수가 없기도 하고 심한 신경성 기침이 일어났다. 식사를 할 때는 토기가 있었다. 몇 주일이나 심하게 목이 말랐으나 컵을 입에 가지고 가면 그것을 반사적으로 멀리해서 물을 마실 수도 없는 증상이 나타났다. 이야기할 힘도 없어져서 드디어 모국어를 전혀 잊어버리고 영어로밖에 이야기 할 수 없게 되기도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 외에 착란, 헛소리, 인격교대 등 여러 가지 심한 장애를 나타냈다.
  그녀는 정신 상태의 착란을 일으켜 인격전환을 하고 있을 때에는 알 수 없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브로이어는 그녀에게 최면을 걸고 그녀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억압된 감정을 토해내게 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병상에 있는 부친의 병간호를 하고 있을 때 느낀, 깊은 슬픔을 띤 감동적인 공상을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껄여버리면서 한참은 정상적인 심리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실신 발작 등의 심리변조는 부친 간호 중의 인상적인 체험에 근원해 있다고 추정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걸린 담화 요법으로 그 증상을 회복해 그때의 감동을 거의 토해 버렸을 때 이 증상은 영구히 해소되어 버렸다고 보고 되었다. 그녀는 왜 이와 같은 증상이 시작되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몇 주일이나 심하게 목이 말랐는데도 물을 마실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영국 태생 부인(가정교사)이 데리고 있던 강아지가 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부인에 대해 실례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 심한 혐오의 기분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그 때부터 이 증상이 시작되었다. 최면 중에 이 일을 지껄여 쌓이고 쌓인 것을 전부 토해 버리니까 컵을 입에 댄 채로 최면에서 깨어나도 아무런 불쾌감도 없이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시계를 보려고 눈앞에 가지고 오면 글자판이 아주 크게 보이는데 눈물을 부친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열심히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상지의 마비와 모국어의 망각에 대해서는 부친이 고열이 나서 빈에서 의사를 기다리면서 몹시 긴장된 하룻밤을 보낸 일이 있었다. 모친은 안 계시고 그녀는 병상 곁 의자에 앉아서 오른팔을 등에 대고 있었다. 그 때 일종의 각성몽에 빠졌는데, 한 마리의 검은 뱀이 벽에 나타나서 병자를 물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안나는 쫓아버리려고 했지만 오른팔은 지각을 잃고 말을 듣지 않고 마비되어 있었다. 이 팔을 보고 있으면 그 손가락은 칭칭 감긴 작은 뱀으로 화했다. 뱀이 사라지고 나서 불안을 잊어보려고 했지만 어느 나라 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냥 영어의 동시가 생각났을 뿐이었다. 그 후는 그 영어만으로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말을 하게 되었다.
  이런 증상도 최면 중에 이 장면을 추상하고 나서는 제거된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 병의 원인이 되는 것 같은 외상적 경험에 따라서 발산될 에너지가 그 발산로가 막혔기 때문에 증상이 일어난다고 해석되었다. 어떤 정신적인 갈등을 밖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기분이 다른 원인에 의해서 억압되었을 때 그것이 몸의 내부로 옮겨져서 계속 여러 가지 장애를 일으킨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이러한 예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프로이트 자신이 생각하는 법이 여러 가지로 발전해 온 것이지만 이러한 예는 역시 프로이트 학파가 생각하고 있는 무의식이 어떠한 영향을 의식에 미치고 그것이 표현되어 있는가를 아는 좋은 예인 것이다. 더욱이 프로이트는 사실은 안나가 브로이어에게 연애 감정을 품고 임신 공상을 품게 됨으로써 히스테리는 낫지 않았다고 하는 숨은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어떤 특별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싫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은 의식상의 논리로서는 설명되지 않는 잠재의식의 작용인 경우가 있다. 반대로 왜 특정한 사람이 좋아지는가 하는 것도 의식 세계에서는 좀처럼 알 수 없다.
  K양의 예를 살펴 이것을 고찰하기로 하겠다. 연령은 14세, 기품 있는 어머니를 따라서 상담하러 왔다. 그의 호소 내용은 12세가 되는 여동생 P양과 언제나 싸움만 해서 곤란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근처 물건을 마구 던져대기도 하여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소녀의 부친은 수년 전에 사망하고 집에는 모친 외에 대학 재학중인 오빠와 동생이 둘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서는 얌전한 아이였고 현재 중학교 1학년이지만 선생과는 거의 대화를 나눈 일이 없는 것 같다. 또 친구들도 그다지 없고 단 한 사람의 친구와 편지를 교환하던지 방문하기도 했다.
  성적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특별히 나쁜 편도 아니다. 어쨌든 학교에서 K양의 행동에는 꼬집어 말할 만한 특징은 없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앞에서 말한 대로 동생인 P양과 특히 심한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싸움의 실마리는 무엇입니까?”라고 모친에게 물었더니 “별로 심한 확실한 요인은 없습니다. 그냥 정말 사소한 일로 서로 말하는 중에 어느 사이엔가 큰 싸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어른들 입장에서 볼 때는 정말 하찮은 일로 인해서 아이들은 큰 싸움을 하는 것이었고, 어쩌면 무의미한 일이 많았다. “언제나 P하고만 싸움을 합니까?”라고 물으니까 “네, 대개 그렇습니다. 어떤 까닭인지 모르지만 이 애는 P와는 특히 그런 일이 심합니다. 나와 K와 셋이서 외출했을 때의 일인데 K는 P에게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게 하고 P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걷고 있는데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싸움할 때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입싸움이지만, 그러는 동안 내가 말리려고 들어가면 더욱 더 심해져서 못이나 송곳을 꺼내서 눈을 찌르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상처를 입히려 드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해서 단순히 놀려 주려고 한 것 같지만 그 때의 맹렬함에 차칫하면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위험한 물건을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모친의 호소는 그냥 그것만으로 집중되어져 있었다. 문제의 K양에게 어째서 싸움을 하느냐고 물으면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그만 무엇인지 화가 납니다.”라고 대답하고 그 이상 되풀이해 물어도 그냥 형식적으로 묻는 말에 대답할 뿐이다.
  결국 이 소녀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우리 연구소에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이삼 주 지나니까 처음에는 과묵했던 소녀였지만 점점 서로 이야기하게 되고 연구소에 나오는 것이 처음보다는 싫지 않게 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집에서 언제나 자기의 그 같은 행동을 병이라고 하니까 연구소에 무리하게 오는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이제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동생이 말을 걸어오기라도 하면 점점 서로 말하고 있는 동안에 언쟁이 되어 그만 성이 나 버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들 자매가 싸우는 의식상의 원인을 확실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 분석은 대단히 그 기술이 어렵고 그리 간단히 무의식 문제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심리적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 최면상태로 유도해 여러 가지 일을 물어보는 방법을 택해 보았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결국 K양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고 만약 동생이 자기보다 더 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차라리 동생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관념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한편 자신의 그런 생각은 죄악이라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그러한 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여기서 비롯되는 마음의 갈등이 그를 괴롭혀 결국 동생을 보면 짜증스럽고 미워져서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는 이런 내면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역시 어느 정도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이 성적인 것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는 그것이 애정에 관한 것이므로 더욱 그러한 충동이 억압되어 의식 속을 여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 하에 쫓겨 버리게 된 것은 절대 그대로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다. 그것은 쉬지 않고 의식 위로 솟아 나오려 한다. 그러나 저항선을 돌파해서 그대로 의식에 오를 수는 없으므로 전혀 다른 어떤 모양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극히 일상 생활적인 것의 예를 든다면 싸움이라든가 호오, 애증 같은 것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의 발현은 꽤 운명적인 것으로서 이를테면 결혼한 부부가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져버리는 것 같은 예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 간단한 것 같이 표현되어 있지만 정신 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무의식세계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역시 단순히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하는 간단한 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뭔가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가 잠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 ‘일상생활의 정신병리’중에서 우리들의 조그마한 실언이나 농담 같은 것도 실은 그것이 그냥 우연한 실언이 아니라는 예를 들고 있다. 조그마한 말의 잘못도 그것은 단순히 빙산의 일각이고 그 아래에 있는 무의식 세계에는 그와 관련된 숱한 문제가 축적되어 있으며 잠깐 동안 우리들이 나체 욕구를 의식하는 경우도 더 큰 본능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아 심리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
  양친과 자녀와의 관계는 미국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여 많이 연구되어 왔다. 결국 유아기부터 갖는 양친과의 심리 관계가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신경증이나 정신분열증의 원인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문화인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문제는 역시 유아기부터 갖는 어머니와 자식의 심리적 상관관계에 의해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식과 어머니 간에 콤플렉스가 남아 있고 더구나 모친이 아들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강할 때 더욱 심하게 일어난다고 생각되고 있다.
  부부간의 내면적 관계가 억압되어 있을 때, 그 결과 생기는 부부간의 복잡한 감정이 아이들에게 상식 이상으로 과잉된 애정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양친이 아이들 앞에서 입다툼을 한다거나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심하게 꾸짖는 일은 그 아이들의 인격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교육자나 심리학자가 그러한 보고를 해서 양친에게 계몽하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러나 우리 집 아이들은 이와 같이 정상이며 신경증 같은 것은 걸려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만약 부모가 좀 더 자녀 교육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그 아이들은 더 잘되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의 가설은 일반적으로 양친과 아이들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적인 문제로는 아직 아무런 입증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5. 성격의 이해

  개성, 즉 개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는 어떠한 방법이 있는 것일까. 이것을 학문적인 개념에서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이다. 그러나 전체를 한꺼번에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점이 있으므로 부분적으로 나누어 검토해보기로 하겠다. 지금까지 완성되어 있는 유명한 학설이나 기술에서 설명해나가는 것이 가장 알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표적인 것으로서 크레치머의 학설에서 개성의 이해 방법을 들어보기로 하겠다.

  크레치머의 학설
  크레치머(Kretschmer, 1888~1964)는 체격과 성격의 학설로 유명하다. 그의 학설에 의하면 정신장애는 내인성, 외인성, 심인성 등 세 가지가 있고 내인성의 것은 소질과 유전에 의존해 있으며 외인성의 것은 뇌의 기질적 질환에 의한 것이고 심인성인 것은 환경이나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크레치머는 내인성의 요인을 매우 중시했다. 결국 성격형성은 환경이나 심리적인 요인에 영향받지 않고 순수한 소질적인 것에 의한다고 생각했다.
  성격이라고 하는 것이 환경을 바꿀 때마다 그 자체도 바뀐다면 그것은 성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크레치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격이라는 것은 항구적인 것으로 변경하기 힘든 것을 특성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크레치머는 그 이유로 내인성 정신질환인 정신분열증, 조울증, 진성 간질병은 현재의 연구 단계에서는 환경이나 심리적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며 뇌 중의 기질적 변화에 의한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혈통적, 소질적인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 내인성 질환은 성격 혹은 체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크레치머의 이론이 체질에 관계가 있다고 한 것은 대단히 오랫동안 관찰되어 온 정신장애와 체형의 통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체격과 성격에 관한 연구는 크레치머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며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 연구되어온 것이다. ‘콘스디이쥬우션’은 ‘어떻게 일이 구성되어 가는가 하는 과정과 그 결과’라고 하는 뜻인데 뼈 조직이라든지 테두리라고 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구조형태’가 본래의 의미인 것이다. 16세기에는 체질이나 신체의 특성, 특히 건강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말이 사용되었다.
  즉 이 단계에서의 ‘콘스디이쥬우션’이라고 하는 것은 성격과 신체의 상태, 소질과 체질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18세기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이것은 주로 ‘신체가 구성되어 있는 전체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 왔다. 결국 체격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 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크레치머는 내인성 정신 질환인 정신 분열증, 조울증, 간질병 등을 들어서 그 체격을 검토했다. 그 결과 조울병인 경우에는 64.6%가 비만형, 19.2%가 세장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분열병인 경우에는 여기에 비해서 50.3%가 세장형, 13.7%가 비만형, 그리고 간질병인 경우에는 형성 불완전형이 29.5%, 투사형이 28.9%라고 하는 결과가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정신 분열병은 세장형의 체격, 조울병은 비만형의 체격, 간질은 투사형의 체격에 각각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단순히 내인성 정신 질환과 체격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인성 정신 질환의 배후에는 병전(病前) 성격, 혹은 유전적인 가계연구, 소질의 연구에서도 이런 성격과의 친화성이 강하게 인정되게 되었다.
  크레치머가 유명한 ‘체격과 성격’을 쓴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대개 야위고 가늘게 생긴 턱에 보드라운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람은 까다롭고 강퍅하다고 생각되고, 한편 살찐 사람은 좋은 성품을 갖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하여 동화나 소설에서도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음모를 잘 꾸미는 자는 구부정하고 가벼운 기침을 한다. 나이 든 마녀는 말라빠진 새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소란하고 음란한 분위기의 장소를 찾는 탕아는 불그레한 얼굴에 대머리를 번쩍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이해성 있는 마누라는 뚱뚱하고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손을 허리에 대고 있다. 성자들은 맑은 모습으로 손발은 길고 눈빛은 날카롭고 안색은 청정하고 엄한 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외관적 체격에서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은 과연 통계라든가 혹은 우연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체질 이론은 몇 세기에 걸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결정화 된 것으로서 그것은 퍽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여위고, 머리털을 길게 한 신경질적인 얼굴의 사람인 경우에는 극히 과민하고 그리고 내향성이고 비사교적이라는 것을 대개의 경우 알 수가 있다. 그 반면 살찌고 대머리인데다가 배가 튀어나온 사람은 명랑하고 잘 지껄이고 사교적인 것도 또 일반적인 인상에 가깝다.
  이것이 크레치머 체질이론의 기본적인 것인데, 크레치머는 오랫동안 이러한 ‘체질’이라고 하는 것이 성격의 배경에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검토해 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율신경성 및 내분비적 제기능과 체격의 관계에 관한 가지가지의 생리학적인 기초를 연구해 오고 있다.
  더욱 최근에 와서 극히 발달한 것은 체질의 발생 생리학이다. 이 분야에서는 주요 체질형과 형성 부전변종의 발생관계를 성숙도의 문제에 결부해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크레치머의 체격과 성격과의 고찰은 내분비의 문제 등에 결부해서 내인성 정신 질환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입장에 극히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개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크레치머 이론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겠다.
  크레치머의 경우에는 성격이 세 가지 체형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는 세 가지 다른 계통의 성격이 유형으로서 성립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하나는 정신분열증의 계통을 일으키는 세장형의 분열성 성격이다. 또 하나는 그것과 꼭 반대의 형이 되는 비만형에 친화성을 가진 조울성 성격인 것이다. 셋째의 유형은 간질과 친화성을 가진 간질성 성격이다. 이 셋째의 간질성 성격에 대해서는 크레치머 자신도 상당히 의문시했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세 가지의 성격 유형을 검토하면서 추가해서 설명하기로 하겠다.

  분열성 성격
  우선 분열성 성격을 살펴보면 첫째 주된 특징은 내폐성이라는 것이다. 이 내폐성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내향성, 외향성이라고 하는 표현의 내향성과 같은 것은 아니고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해도 좋다. 결국 매우 내폐성인 사람도 경우에 따라서는 외향성인 때도 있다. 내폐적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 밖에 벽을 만들고 절대로 자기의 내심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의 정체는 극히 적은 친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내향, 외향이라고 하는 것은 대인 관계에 있어서의 냉정한 태도를 의미하고 있다. 대단히 내폐적이고 절대로 자기의 마음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냉정한 느낌의 사람이라도 사교적으로 볼 때는 많은 사람과 사귀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내폐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경우가 많지만 내폐와 내향은 같은 개념이 아니라고 하는 데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폐적인 성격의 다음 특징은 사고형태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것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고 형태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것은 내폐적인 특징에서 오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내폐적이면 자연히 현실에의 접촉이 단절되며, 비록 실제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내폐적인 생각 때문에 여러 가지 직장에서 생긴 일을 자기 입장에 맞도록만 판단해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것이 심해지면 극단적으로 정신 분열증 또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이 만감 관계망상은 대단히 신경질적이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 직장 같은 데서 주위 사람이 자기 일을 특별히 소문에 올려서 무엇인가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할 경우에도 일어난다. 또 하나의 분열성 성격의 특징으로서는 과민한 것과 무감동인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민과 무감동의 공존도 내폐성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내폐적인 벽의 외부 세계는 대단히 무감동하게 보인다. 그 벽의 안쪽에 일단 들어가 버리면 대단히 과민해지고 상처받기 쉽다. 이것을 현상적으로 밖에서 보면 무뚝뚝하고 차가워서 불친절한 사람과 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속에서는 쉴 새 없이 상처받고 두려워하고 보통 사람 이상으로 동요한다. 분열성의 성격적 특성을 간추려 본다.

  ● 소심하고 사람 앞에 나가기를 싫어한다.
  ● 성실해서 농담을 그다지 하지 않는다.
  ● 남과 다른, 좀 이상한 데가 있다.
  ● 실제보다 이상을 중히 여기고 영원을 동경한다.
  ● 남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생각한 것을 실행한다.

  크레치머는 이것을 몇 개의 형으로 종합해서 분류하고 있다.

  A. 과민형 : 성을 잘 내고 섬세하며 내면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한 이상주의자다.  
  B. 분열성 중간형 : 냉정하며 정력이 넘치는 사람, 시종일관한 체계의 냉정한 귀족주의자. 혹은 성공한 관료 등에 볼 수 있는 형.
  C. 둔감형 : 냉혈한, 냉정한 신경질자, 비굴하고 이상한 사람, 둔감하고 건방진 사람, 비뚤어진 성격인 사람.

  이러한 분열성 성격의 사람들이 사회적인 면에서 활동할 경우, 작가나 학자 혹은 지도자가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형을 취하고 있다. 작가의 경우에는 비극작가, 로망주의, 형식주의 예술가. 학자인 경우에는 엄밀한 이론가, 정밀한 체계가. 지도자의 경우에는 순수한 이상주의자, 독재자와 광신자, 냉혹한 타산가라고 볼 수 있다. 분열성 성격의 기본적인 특징은 내폐성이고 그러한 테두리에서 가지가지 생활환경에 따라서 성격의 반응이 완성되어 온다. 이 경우 성격의 반응이라는 것은 그 환경에 의해서 취해지는 심인적으로 형성된 성격의 일면이다.
  이러한 개념적인 설명만으로는 좀처럼 분열성 성격의 본질을 포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레치머가 서술한 유명한 예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것은 이레네 헬델이라고 하는 젊은 정신분열증 여성의 예인데 크레치머는 이 여성을 구사할 때 분열병의 증상, 그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증례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헬델은 정신 분열병의 증례로서보다도 오히려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분열성 성격자로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를테면 그는 무도회라든지 사교장에 절대로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회합에 모습을 나타내고 싶었지만 대단히 내폐적으로 자기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더구나 대단히 우아하고 과민했으며 정신세계의 상태는 현실 생활에서 떨어진 것에 깊은 애착을 나타내고 있다.
  또 하나의 대단히 중요한 점은 크레치머의 체질 이론이 이 예의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 체격과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투명한 듯한 피부는 밝은 갈색이고 콧날이 서고 관자놀이에 파란 정맥이 떠오른 것이라든지, 가느다란 손등 전체적으로 세장형의 체질특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분열성 성격의 전체상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좋은 예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경우는 크레치머의 날카로운 관찰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결국 이레네 헬델의 생활상에 걸쳐서도 관찰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결국 이레네 헬델의 생활상에 걸쳐서도 관찰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었는데 중요한 점은 그 성격이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증례

  이레네 헬델은 29세로서 평범한 공무원 가정의 딸인데 어느 날 오빠를 따라서 우리들에게 왔다. 검사 결과 그녀는 복잡한 망상 체계에 따른 꽤 진행된 정신 분열증임을 인정받았다.
  그는 가늘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고 극히 몸에 잘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얼굴은 길고 핏기가 없어 차가운 느낌이 들고 말이 없고 형식적이고 냉정하며 단정하고 매우 정중하다. 항상 똑바른 자세를 하고 있고 의자에 걸터앉아도 기대지를 않았다. 표정은 조심스럽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며 입술만 움직여서 말할 뿐 미소짓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동생과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에게는 어느 정도 인간적인 친밀감이 있었다. 이 동생은 머리색이 연한 갈색이고 투명한 듯한 살갗을 하고 있으며 표정은 우아하고 섬세한 감정을 갖고 있었으며 상냥하며 매우 얌전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음은 확실하지 않았으며 감정적인 억양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죽은 모친은 틀림없이 우아하고 세밀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환자인 그녀는 그 형제와 같은 조잡한 성격의 인간에게는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렸을 때 당신은 어떠했습니까?”라고 어느 날 환자인 본인에게 물었다. “기운이 없고 조급했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공부는 그녀에게 대단히 괴로웠다. 그러나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그녀는 열심히 공부하며 자신에게 대해서는 엄격히 행동했고 절대로 체념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했다. 16세에 프랑스의 기술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는 향수병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프랑스어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그녀는 극도의 신경질 때문에 흥분하거나 피곤해지기 쉽고 금방 화를 내기도 했다. 조금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침실을 정리한 것으로 인해 머리 속에서 공상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심한 백일몽의 경향이 있었다. 공상한 일은 똑똑히 실제로 본 것처럼 말했고 지나치게 긴장한 후에는 언제나 그렇게 되었다. 겉으로는 느리고 둔한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졸면 안 된다고 자주 주의를 줬는데 정말 그때는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언제나 기분을 맞추기 어렵게 틀어박혀만 있어서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일찍부터 그녀는 똑똑하고 침착한 소녀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녀의 취미의 경향과 도덕적인 견해는 대단히 확실했었다.
  그녀는 자기의 감정을 무리하게 억눌러 외부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누구에게 대해서도 결코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한 일도 없었다. 반면에 내심으로는 감상은 쉽게, 의심은 깊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겉으로 나타난 태도에는 충분하고 명랑하다고 할 수 있는 침착성이 있어 더구나 성실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남 앞에 나서는 일을 싫어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무도회나 파티에 그녀를 불러내는 것은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 그런 장소에 나오면 완전히 자기감정을 누르고 춤도 추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도 하고 절대로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일이 없고 남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상의 친밀한 감정을 나타낸 일도 없었다.
  그녀의 가족은 장래 그녀가 결혼할 마음을 보이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에 있어서 그러한 일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모임에서 저속한 말이 나오면 즉시 미소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잘 손질된 생활, 말끔히 정돈된 가구와 장식, 아름다운 책 등에 대해서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귀족 사회의 묘사라던가 황실이나 우아한 귀부인이나 스포츠에 대한 책을 읽는 일은 비교적 좋아해서 귀족이나 아름답게 차려입은 사람들에게 열중했다. 그녀 자신의 활동에는 형식적인 고상한 감수성이 풍부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전혀 욕심이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대해서도 대단히 마음씀이 깊었으며 만약 그녀가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 같은 말을 한 마디라도 했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백번이나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한참동안 동생과 한 방에 살고 있었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숨조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는 대단히 섬세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고 누구에게든지 상냥했지만 어머니를 제외한 어떤 사람과도 친해질 수 없었다. 아무리 우정이 두터워져도 그녀와는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가 없었다.
  모친은 그녀가 정신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집안에서도 항상 그녀를 감싸주었다. 그녀를 하녀나 머슴들과 이야기하거나 일체 조잡한 접촉에서 멀리하게 해 주었다. 어머니만이 그녀의 정신생활 속까지 간파할 수가 있어서 그 외의 사람은 아무도 그녀의 뒤에 일어나는 어머니에 대한 병적인 연정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 너무 강한 인상을 줍니다.”라고 그녀의 오빠는 말했다.
  “그 이후는 모두가 그녀의 망상의 근원이 됩니다. 수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형제의 다리 역할이 없어져서 큰 간격이 생겼습니다.” 정신병은 거의 사춘기 이후 서서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러한 성격의 그늘에 숨겨져서 더구나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발전해 왔다. 모친의 사후 그녀의 정신장애는 눈에 띄게 현저해졌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는 어느 젊은 교수를 몇 번 버릇없이 쳐다보았기 때문에 그 보복이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망상으로 비약했다. 그 교수가 지휘하고 있는 수사조직 중에는 동네 사람이나 가족까지도 가담되어 있었고 그녀에게 대하여 복수를 시작했다 - 계속해서 의혹과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고 적의를 가진 냉정함이 가끔 그녀를 엄습하며 파괴충동을 일으켰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부셔버리고 싶었고 누구든 붙잡고 실컷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차츰 기묘한 일을 하게 되고 모든 일에 차츰 냉담해져서 틀어박히게 되고 의사표현은 애매하게 무언가 부자연스럽게 되었다. 웃을 일이 아닌 데 가끔 발작적으로 웃어댔다. 집중력이 상실되고 마음은 헤풀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그녀는 거의 먹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방은 잠잠했다.
  왔다갔다하는 발자국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옷은 검소하고 우아하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난다. 피부는 공기와 같이 투명하고 머리는 밝은 갈색이고 코는 가늘고 관자놀이는 파랗게 정맥이 떠 있다. 남을 끌어들이지 않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동작은 느리고 섬세하고 귀족적이고 때때로 불친절한 데가 있다.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동안에 살짝 뒷걸음쳐서 옷장에 기대려고 한다. 무엇인가 이상하고 대단히 몽상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 손은 가늘며 길고 부드럽다. 인사를 할 때에는 차고 대단히 투명한 손끝을 내밀 따름이다. 그녀는 희미하게 망설이는 것 같이 멍하니 미소짓는다.
  이 증례를 또 한 번 검사하는 데 있어서 보태야 할 중요한 점은 이레네 헬델의 가계에 대하여 이야기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는 이레네 헬델의 오빠가 등장하지만 이 오빠의 태도 역시 대단히 자세하게 크레치머는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동생에 있어서도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성격의 계통에서 볼 때 분열증 성격이라는 것을 크레치머는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더라도 분열성 성격이란 단순히 체격과 성격, 두 개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고 그 가계, 결국 유전소질, 그리고 생물학적인 기초 위에서 자세히 검토되어 온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분열성 성격인 사람이 대체 병원이나 그 밖의 직장에서 어떠한 형태로 적응하고 어떠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대개 이러한 성격의 사람은 병원이나 그 밖에 직장에서 절대로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과 사귀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이 맞는 극소수의 친구와 깊은 교섭을 가지려고 할뿐이다. 일단 그러한 친구관계가 성립되면 모임이 있다든지 클럽의 활동에 대해서는 냉담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사고가 깊이 존재해 있어서 그냥 친구와 모여 떠든다고 하는 것 같은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사교라든가 친목이 아니고 조합관계의 활동이 있다든가 직능적인 경우에는 때에 따라서 적극적 역할을 다하는 일이 있다.
  분열성 성격인 경우에는 때에 따라서 적극적 역할을 다하는 일이 있다.
분열성 성격인 사람은 일반적으로 사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나 그것이 써클활동이라든가 조합 활동과 같이 조금 기능화되어 있으면 그 인간관계 가운데 들어가기 쉽게 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인간관계면 단순히 좋아하니까 함께 차를 마신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하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직접적인 것이다. 그러나 조합이나 써클활동의 경우에는 그러한 것을 초월한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차원의 추상성에 매력을 느껴 비교적 일하기가 쉬운 점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레치머가 지적한 것 같이 어느 종류의 분열성 성격인 사람은 광신적인 독재자가 되거나 대단히 편협한 이상주의자로서 활동할 가능성이 나오는 것이다. 또 하나 분열성 성격에 대해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 청년기적인 특징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청년기가 되면 고독을 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혐오감과 열등감을 품게 되며 한편 대단히 강하게 자존심을 높이고 추상적이고 학문적인 세계에 빠지기도 하며 혹은 특별한 세계에 빠지기도 하며 특별한 세계를 자기의 은신처로 하는 경향이 시작된다.
  이 시기가 되면 자기 주위에 있는 어느 현실의 세계가 무언가 초라한 것 같으면서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에 지배된다. 그러므로 갑자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은 청년기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취해진 유일의 도피형태는 추상적인 것이나 몽환적인 것 혹은 비인간적인 것으로도 지향되어 오는 것같이 된다.
  분열병 그 자체도 대단히 청년기적인 심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누차 말해오고 있고 분열병적 심성과 청년기적인 것에 뿌리를 뻗고 있다는 것은 일반 학자들도 많이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기의 특징과 분열성 성격의 특징을 혼동하는 과오는 비교적 많이 범하기 쉽다. 우리들이 관찰한 결과에 의하며 질문지의 형식을 취할 경우에 청년기의 사람들은 시험을 받는 자에게 사용하면 아무래도 실제보다 더 분열성 성격적인 특징이 나타나기 쉽다.
  그러나 청년기도 점차 후기에 들어가면 현실에의 적응력이 증가하는 동시에 그러한 경향은 적어지고 본래의 성격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청년기적 특징과 분열성 성격과의 관계는 역시 개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하나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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